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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전통을 넘어 새 길을 여는 한지, 그 중심에 선 텍스타일 아티스트 이선
작성일 : 2022-08-19 조회수 : 117

 

크리에이터 Creator
제5호에서는 한지를 활용해 우리 일상을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공예작가, 디자이너, 브랜드 등 창작자와 그들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전통을 넘어 새 길을 여는 한지, 그 중심에 선

텍스타일 아티스트 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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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텍스타일 아티스트이자 소셜 디자이너 이선. 그는 한지로 옷을 짓습니다. 이선 작가의 손을 거친 한지는 전통 소재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한계를 넘어 다채로운 기법과 쓰임이 가능한 매개로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이선 작가의 작업 중 ‘문화유산의 소비 Consumption of Heritage(2018-2019)’는 패션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한국 전통의 공예에서 찾는 작업입니다. 종이를 비벼 만든 노끈으로 엮는 지승 공예와 태피스트리 위빙(Tapestry Weaving, 다양한 색실을 사방에서 교차해가며 직물을 짜는것)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조끼, 한지를 찢어 닥섬유의 결로 깃털을 표현한 조끼, 단청에서 영감을 받은 기하학적인 패턴을 오려낸 조끼, 한지의 따뜻한 성질을 이용해 한지를 겹쳐 바느질한 후 남은 한지 조각을 충전재 삼아 채운 패딩 재킷 등에서 다양한 기법으로 변주한 한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선 작가의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벤(Design Academy Eindhoven, 이하 DAE) 졸업 작품이자 본격적인 한지 작업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 Ronald Smits

 

본래 이선 작가는 국내에서 활동하던 패션 디자이너였습니다. 텍스타일 아트를 전공하고 2010년부터는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꾸렸죠. “대학 졸업을 위해 옷을 만들던 2008년이었어요. 오랜 시간 공들여 염색하고 손질한 원단이 재단 가위가 지나간 방향에 따라 일부는 옷이 되고 나머지는 난단(쓰고 남은 자투리 원단)이 되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죠. 쓸모없어 버려지는 쪽으로 관심을 돌려 난단을 투명한 원단에 넣은 쿠션을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이미 이선 작가는 패션 산업이 환경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한 듯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초 삼아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동안에도 난단을 이용한 쿠션, 스툴, 테이블, 클러치백 등을 꾸준히 만들었으니까요.

 

ⓒ Lee Sun

 

2011년 무렵엔 신진 디자이너가 주요 백화점에 팝업 스토어를 여는 것이 패션업계의 추세였습니다. 이선 작가는 대형 백화점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에서 자신의 브랜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날, 매장을 무심코 둘러보다가 놀랐다고 합니다. 독립 브랜드치고는 너무 많은 양의 옷을 생산했다는 사실에 말이죠. 불현듯 찾아온 회의감은 패션 소비에 따르는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2016년 이선 작가는 네덜란드로 날아갑니다. DAE에서 소셜 디자인(Social Design, 환경이나 인권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디자인 학문)을 전공하면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생산과 소비에 대항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패스트 패션 산업은 최악의 과정을 끌어안은 채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재배, 염색, 방적, 직조 등의 생산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을 일으킬 뿐 아니라 비윤리적인 노동 환경도 악명 높죠. 운송, 판매, 사용 및 폐기, 유통과 소비의 단계 또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요. 게다가 대개 패스트 패션의 소비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소비자의 욕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면이 커요. 일회성에 가까운 소비패턴은 7번 입고 버려진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고요.” 그 끝에 전통 소재 한지를 사용한 텍스타일 아트 작업을 시작합니다.

 

사람, 입은, 코트, 옷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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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en Yichen

 

“한지는 제 작업의 키워드인 처분 가능성(disposability), 짧은 수명(ephemerality),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적합한 소재예요. 한지는 어떤 기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물성이 다양하게 변하니까요. 변화무쌍한 한지의 특장점과 다양한 기법을 결합해 전통 공예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엔 전통 소재 사용을 장려하자는 뜻도 있어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불러온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1960년대 정부는 섬유 패션 산업을 추진했습니다. 이는 경제 발전에는 유용했지만 500년 이상 이어온 우리나라의 풍부한 공예문화를 지역에서 몰아내고 말았어요. 한지로 지은 옷은 패션 산업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빼앗긴 문화유산을 우리 사회로 되찾아오자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선 작가가 네덜란드에서 한지 작업을 처음 시도했을 땐 시중에서 판매하는 기성 한지를 우편으로 받아서 썼습니다. 경상남도 의령의 신현세 한지장의 공방을 찾은 이후부턴 줄곧 ‘신현세전통한지’로 작업해오고 있고요. 1961년 입문하여 60년 이상을 한지 제작에 몸담아온 신현세 한지장은 전통 연장과 설비 등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한지의 전통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온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입니다. 오랜 기간 각종 고문헌의 보수·복원과 사경용 한지를 특화해 생산하고 있죠. 이탈리아의 국보급 유물인 ‘카르툴라(Chartula, 프란체스코 기도문)’과 교황의 지구본 복원에 사용한 복원지도 신현세 장인의 것입니다. “되도록 자주 귀국해 그때마다 장인분들을 찾아 뵙고 전통 재료를 구입합니다. 디자이너로서 제가 사용하는 소재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방에 방문해 장인을 만나 뵙는 일은 단순히 소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장인분들의 노력과 시간, 즉 삶 자체를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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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en Yichen

 

이선 작가는 얼마 전 세계적인 트렌드 예측가 겸 디자이너 리더바이 에델쿠르트(Lidewij Edelkoort)가 이끄는 세계희망포럼(World Hope Forum)에 초대받아 프리젠테이션을 했습니다. 이후 한지에 관심을 두고 구입 방법을 문의하는 이들에게 신현세전통한지의 해외 판매 에이전시를 소개하기도 했다네요. “한지가 가진 깊은 매력은 해외 관람객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 Masaya Ko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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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saya Kochi                                       ⓒ Dong-joo Soon

 

요즘 이선 작가는 한지 깃털과 오브제 작업을 지속하는 동시에, ‘한지 책 프로젝트’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막연히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한지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소재로 재정의하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일입니다. “한지의 조직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실험을 통해 흡습성을 비롯한 한지의 물성을 수치화하고 있고요. 이를 그래픽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그래프나 도표로 이해하기 쉽게 담아낼 계획입니다. 그간 한지를 연구한 논문이 여럿 있었지만 숫자로 나열된 데이터를 일반인이 해석하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한지 책 프로젝트’는 한지를 지속 가능한 삶의 필수적이고도 강력한 도구로 바라보고 새로운 기법과 방향성을 제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에요. 현재 마지막 실험과 촬영만을 앞두고 있고, 예정대로라면 올해 안에 한지문화산업센터에서 선보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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